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이슈

북한군 귀순으로 본 역대 귀순 사례들

niHoo 2017. 11. 14. 19:33


JSA를 통해 귀순 한 북한군이 현재 많이 위독하다고 하죠 


현재 귀순 병사를 치료중인 이국종 교수는 현재 귀순 병사의 상태가 많이 안좋다고 하고, 


몸 속에는 아직 총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JSA를 통한 북한군의 귀순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귀순 한 많은 사례들 중 


가장 독특했던 귀순 사례들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전투기를 타고 귀순 했던 이웅평 대위가 있습니다 


(이웅평 대위의 모습)



이웅평 대위가 귀순을 결심했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해안가를 걷다가 우리나라에서 떠밀려간 삼양라면 봉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삼양라면 뒷부분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바로 '변질 훼손 된 물품은 본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교환, 환불 해드립니다' 이것이었죠 


이 글을 보고 이웅평 대위는 


'남조선은 이런 작은것에도 인민을 위해 이러한 정성을 들이는데 지상 낙원이라는 북조선은 왜 이런가?'


라는 의문을 품고 자신이 몰던 미그기를 타고 1983년 귀순 하게 됩니다. 


이 대위가 몰고 왔던 전투기는 군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당시 돈으로 15억원을 받게 되었죠. 그리고 북한에서의 계급을 인정받고


우리나라에서 소령으로 재입대를 합니다. 


북한에서부터 독한 술을 즐기던 그는 귀순 후에도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북한의 보복이 두려워 술을 끊지 못하다가


97년 그의 사무실에서 쓰러졌고 2002년 간기능 부전증으로 국군 수도 병원에서 별세 하였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하여 북한에서 31명이 침투 하게 됩니다.


침투 한 31명 중 투항해서 살아남은 것은 김신조 뿐이었습니다. 도주 한 2명을 제외하고 28명은 우리 군에게 사살당했습니다.



(김신조의 모습)

김신조가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 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내레 청와대 까부수고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소' 


기자회견이었지만 김신조에게 기자회견이라는 언질조차 주지 않았고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10여년전 그는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북에 있을때는 상상할 수 없다. 자유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대로 목회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2012년 10월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일명 '노크귀순'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북한군 1명이 GOP의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힙니다.



이 북한군 병사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음식물을 훔치다 상관에게 적발 된 후 상관과 싸우고 귀순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크귀순으로 인해 우리 군의 경계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었죠. 이 사건으로 국방부장관이 나서 


사과를 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귀순 병사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철창을 모두 넘고 비무장지대에 깔려


있다는 지뢰를 모두 피한 뒤 북한과 우리나라의 근무자들의 눈도 모두 피해 그야말로 완벽하게 귀순에 성공 했기 때문이었죠.


이것이 만약 귀순이 아니라 침투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입니다. 



이후 우리 군은 귀순 유도벨을 설치하여 대책을 마련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 귀순 사례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